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주 월성로 금제 드리개 (문단 편집) == 내용 == [[파일:경주 월성로 금제 드리개4.jpg]] [[경주 교동 금제 드리개]]와 함께 전시된 모습. 1985년 3월 전국소년체전 준비를 위한 환경미화 차원에서 [[경주시|경주]] 월성로(月城路)의 아스팔트를 다시 포장하고 좌우에 매설된 하수관을 교체하던 과정에서 총 56기의 고신라시대 고분이 발견되자 [[문화재청]]을 중심으로 가-13호 고분 및 기타 몇개 고분을 부분 발굴하던 중 출토된 것이다. 당시 가-13호 고분에서는 [[경주 월성로 금귀걸이]], [[경주 월성로 금목걸이]], [[경주 월성로 금구슬]], [[경주 월성로 유리잔]] 등 약 800여점의 신라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. 아직 월성로 고분군의 완전 발굴은 이루어진 적이 없으나 [[경주 월성|월성]] 주변은 이미 3세기대부터 고분군이 조영되기 시작하였고, 늦어도 4세기 전반에는 이혈 으뜸·딸린덧널식의 대형 덧널무덤이 조영되는 등 고신라 초기부터 무덤 조성이 이루어진 이른 시기의 고분군으로 확인되고 있다. 이 금제 드리개의 제작 연대 또한 대략 4~5세기(서기 300~400년대) 정도로 추정된다. [[파일:경주 월성로 금제 드리개3.jpg]] [[http://www.koya-culture.com/news/article.html?no=114181|사진 출처 : 우리문화신문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추천 유물 - ‘드리개’ - 관 꾸미기의 완성]] 지금으로부터 1,700여년 전, 4세기(서기 300년대) 무렵 [[신라]]의 정교한 [[황금]]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로,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. [[분류:신라의 금제유물]] [[분류: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]] [[분류:경주시의 문화재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